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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5

2011년 8월의 그날... (북한, 비전트립, 베이징, 뉴욕, 맨해튼, 타임스퀘어, 시애틀, 허리케인 아이린, 유모차 기도,...) 2007년, 북한 접경지역으로 비전트립을 갔다. 마지막날 밤 베이징에서 꿨던 생생한 꿈. 내가 마천루 빌딩이 들어찬 복잡한 거리에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내가 여기 뉴욕에서 7년 동안(7년째?) 컨설팅을 해왔다"고 말한다... 생뚱맞기 그지 없는 꿈.. 한국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청년회에서 함께 기도하곤 하던 동생이 "언니, 꿈에 언니가 나왔어요." 하는데 우리 둘이 뉴욕에서 대화하는 장면이었다.... 이건 뭐지, 뭘까... 그 이듬해 2008년 9월, 나는 하늘에서 한 남자가 내려오는 생생한 꿈을 다시 꾸게 된다. (평소에는 이런 꿈을 거의 잘 안 꾼다.) 한 달쯤 후, 남편을 소개로 만나고 그 이듬해 2009년 봄 우리는 결혼을 하고 그해 겨울에 딸을 낳았다. 베이징에.. 2023. 10. 18.
[애터미 이야기] Why Atomy? 애터미와 나 (긴글주의, 경단녀, 주부, 미국, 뉴저지, 뉴욕,....) 저는 전문성도 그닥 없고, 빠릿빠릿하지도 못하고, [알고보니 어릴 때부터 ADD(조용한 ADHD) 증상을 보여온] 경단녀 주부(그렇다고 주부로서의 전문성도 부족한)였습니다. 별 생각 없이 남편이 벌어오는 수입에만 의존하며 살았는데 워낙 소비지향형 인간이 아니고 아끼는 편이어서 난 잘 지내고 있겠지 막연히 자부하고 있었는데 마치 금간 독에서 물새듯 재정이 점점 줄어들더라고요. 한국, 미국 왔다갔다 하며 비자 세 번, 영주권 한 번,... 그러다보니 정착은 못하고 장기계획 세우기도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들고.. 이런저런 핑계는 있겠지만, 사실 재정적인 부분에 대해 너무 무지한 채 생각 없이 살았던...그저 아끼고 사는 데만 신경쓰는 철없는 주부였던 것이어요. 그러던 중에 남편이 어느날 이렇게 말했어요. 이렇게.. 2023. 10. 11.
[챗GPT/ChatGPT 도움 받아 영어로 문자 보내기] 예전 이웃분들께 안부와 감사 전하기 챗GPT 때문에 여러 가지 말들도 많고.... 우려 섞인 전망도 나오고... 저도 살짝살짝 무섭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잘 활용해야 하는데.. 하며 조바심이 들기도 합니다. 일단 저는 일상생활에서 한영 번역에 도움을 받고 있어요. 물론 그냥 내용 파악이 필요할 때 영한 번역으로는 구글 번역기를 자주 사용하고 있지만 좀더 어감을 살린 영어 표현이 필요할 때 챗GPT를 활용합니다. 2020년 여름에 뉴저지로 이사오기 전까지 저희는 미국 북서부 워싱턴주 시애틀 옆 벨뷰라는 곳에서 10년 가까이 살았어요. 하지만 게으름과 용기 부족으로 영어 실력 향상은 거의 없는 이상한? 미국생활이었죠. ^^; 사실 지금도 그렇고요. 부끄럽지만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희에게 따뜻한 호의를 보여준 분들께 죄송한 마음이 컸어요. .. 2023. 4. 30.
뉴저지 테너플라이로 이사온 지 51일째... 이런저런 이야기... 샬롬! 1953년 7월 27일, 6.25 전쟁 3년이 지나고 휴전협정이 체결되었죠. 그 후 67년이 지난 2020년 7월 27일, 우리 가족은 미국 북서부 워싱턴주 시애틀을 떠나 동부로 향했습니다. 1948년 8월 15일,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인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고, 그 후 72년이 지난 2020년 8월 15일, 우리는 미국 북동부 뉴저지주 테너플라이에 도착했습니다. (날짜를 일부러 그렇게 맞췄냐고요? 뭐 맞추려는 의도가 아주 없진 않았지만 저희 상황 또한 그러해서... ^^) 이사오는 데 19박 20일이 걸렸습니다. 남편 혼자 운전을 도맡았고 하루 4시간 정도 달렸습니다. 오는 길에 옐로스톤국립공원, 러시모어산(대통령들 얼굴이 바위에 새겨져 있는), 나이아가라폭포 세 군데 들렀습니.. 2020. 10. 6.
10년 만에 시애틀을 떠나며... 저는 가족과 함께 다음달에 정든 시애틀(워싱턴주)을 떠나 뉴욕/뉴저지로 이동하려 합니다. 아직은 직장도, 집도 없지만 일단 떠납니다. 짐은 거의 다 정리하고 차로 갑니다. 2007년 2월, 저는 북한접경지역으로 비전트립을 갔습니다. 북한땅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지하교회 성도들과 선교사님들을 만나 교제하고 축복하는 여행이었죠. 마지막 날엔가 북경의 선교사님 댁에 머물렀는데 그때 너무나 생생한 꿈을 꿨어요. 꿈에서 저는 생뚱맞게도? 뉴욕의 복잡한 거리에 서서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뉴욕에서 7년째 컨설팅을 하고 있"다고... 도대체 뉴욕엔 왜 가있으며 무슨 컨설팅을 하고 있다는 건지 도무지 의미를 알 수 없는 꿈이었습니다. 이전에 뉴욕에 대한 생각을 해본 적이 거의 없는 저였지만 막연하게.. 2020.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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